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아이작 뉴턴 (문단 편집) == 후세 인물들의 평가 == >Nature and nature's laws lay hid in night; God said, "Let Newton be!" and all was light. >대자연과 자연의 법칙은 어둠에 감싸여 있었다. 주께서 "[[빛이 있으라|뉴턴이 있으라]]!" 하심에 [[고전역학|모든 것이 밝아졌다.]] >---- >- [[알렉산더 포프]], 아이작 뉴턴의 묘비명으로 쓴 글.[* "It did not last: the Devil howling 'Ho, Let Einstein be,' restored the status quo.” (그러나 ‘호!’하고 소리치며 악마가 말하길, '''"[[상대성 이론|아인슈타인이 있으라!]]"''' 그러자 모든 것이 원래 상태로 되돌아갔으니.)라는 존 콜링즈 스콰이어 (John Collings Squire)의 패러디 시가 있다.] >뉴턴은 광학에 종사하는 동안 거의 전적으로 빵과 [[포도주]]와 물을 먹고 살았다. >---- >- 현대 [[생리학]]의 창시자인 Haller의 증언. 또한 [[볼테르]]는 뉴턴의 동물에 대한 연민이 있었다고 주장하였다. [[http://ivu.org/history/renaissance/newton.html|#]] >Newton was not the first of the age of reason. He was the last of the magicians, the last of the Babylonians and Sumerians, the last great mind which looked out on the visible and intellectual world with the same eyes as those who began to build our intellectual inheritance rather less than 10,000 years ago. >뉴턴은 이성의 시대를 연 최초 사람이라기보다는 최후의 [[마법사]], 마지막 [[바빌로니아]]인이자 [[수메르]]인, 약 1만 년 전에 인류의 지적 유산을 쌓아올리기 시작했던 사람들과 같은 눈으로 가시적이고 지적인 세계를 바라보았던 마지막 위대한 정신이었다. >---- >- [[존 메이너드 케인스]][* [[경제학자]]로서 가장 유명하지만 아이작 뉴턴 재조명의 선두 주자이기도 하다. 그는 경매에 나온 아이작 뉴턴의 미출간 저작을 구매하여 읽을 정도로 뉴턴에 대해 관심이 많았다. 그리고 그러한 자료를 검토한 끝에 케인스가 내린 평가가 바로 이것.][* 이 말은 케인즈가 강연자로 초대되었던 뉴턴 탄생 300주년 기념 행사 [[https://mathshistory.st-andrews.ac.uk/Extras/Keynes_Newton/|강연 내용]]의 한 단락으로서, 케인즈가 뉴턴에 대해 한 말로 유명하다. 그러나, 뉴턴의 탄생 기념 행사가 예정되어있었던 1942년, [[세계 2차 대전]]으로 인해 행사가 미뤄지고, 케인즈는 결국 이 강연을 하지 못하고 사망한다. 이에 따라,후에 열린 뉴턴 탄생 기념 행사에서는, [[케인즈]]의 형제었던 제프리 케인스(Geoffrey Keynes)가 대신해서 강연을 한다.] >“그(뉴턴)는 [[과학혁명|인류 지성사의 전환점]]이었다. 뉴턴 이전에는 경험 세계의 심오한 특성들을 표현해줄 수 있는 물리적 인과율의 체계가 존재하지 않았다. 서양식의 사유와 연구, 실험방법을 결정해준 사람은 뉴턴 이전에도 없었고 이후에도 없었으며 오직 뉴턴이 그 길을 제시했다. 그는 핵심이 되는 방법을 찾아내는 데 뛰어났을 뿐 아니라 그 시대에 이용 가능했던 실험 데이터를 독창적으로 구사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었다. 또한 수학적이고 물리학적인 세세한 증명방법에 대해서도 뛰어난 창의력을 발휘했다.” >---- >-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뉴턴의 생애는 과학과 더불어 신학과 연금술이 평생 동안 함께 얽혀 있었다. 오히려 분량으로만 따지면 신학 관련 저술이 더 많다. 오늘날 알려진 여러 자료들을 취합해보면 신학적 연구를 위한 수단의 일환으로 천문학에 손을 댔다는 것을 부정하기 힘들다.[* 본격적인 천문학 연구 이전에는 점성술에 관심을 가지기도 했다. 물론 뉴턴이 관심을 가진 이 시기의 점성술은 윌리엄 릴리로 상징되는 고전 르네상스 점성술로, 현대의 별자리 점 같은 것과는 비교할 수 없도록 복잡한 수학적 기법이 필요한 것이었다. 당시에는 컴퓨터 프로그램도 없어서 점을 칠 때마다 밤하늘의 지도를 다 관측, 계산해서 그려야 했다.] 천문학을 위해서 물리학 연구를 했고, 물리학을 위해 수학을 했다고 보는 것이 자연스럽다. 진지하게 본업이 뭔지 따지면 오히려 종교와 신학 쪽이 더 맞는 것. 이것은 케인스가 거시경제학 이론을 만들다 여름에 심심해서 뉴턴에 관한 연구를 하면서 알려지고, 유명해진 내용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